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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이슈/좋은명언

스승에 관한 가르침 말씀, 한유(韓愈)의 사설(師說)

by 묵돌33 2022. 2. 1.


한유 韓愈 (대력 3년(768년)~장경 4년(824년))

중국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등주(鄧主) 하내군(河內郡) 남양(南陽, 지금의 하남 성 맹주 시) 출신이나, 그 자신은 창려(昌黎, 하북 성河北省) 출신으로 자처했다.


古之學者는 必有師하니 師者는 所以傳道授業解惑也라. 人非生而知之者면 孰能無惑이리오. 惑而不從師면 其爲惑也가 終不解矣라. 生乎吾前하여 其聞道也가 固先乎吾면 吾從而師之하고 生乎吾後라도 其聞道也가 亦先乎吾면 吾從而師之리니 吾師道也라.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리오. 是故로 無貴無賤하며 無長無少히 道之所存이 師之所存也라.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내려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되었으면서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된 것은 끝내 풀리지 않게 된다. 내 앞에 태어나서 그가 도를 들은 것이 진실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고 내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가 도를 들은 것이 또한 나보다 앞선다면 나는 그를 따라서 스승으로 삼을 것이니 나는 도(道)를 스승으로 삼는다. 어찌 그의 나이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뒤에 태어남을 알 필요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나이가 많고 적음도 없이 도(道)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嗟乎라. 師道之不傳也가 久矣니 欲人之無惑也가 難矣라. 古之聖人은 其出人也가 遠矣로되 猶且從師而問焉이어늘 今之衆人은 其下聖人也가 亦遠矣로되 而恥學於師라. 是故로 聖益聖하고 愚益愚하니 聖人之所以爲聖과 愚人之所以爲愚가 其皆出於此乎인저.

아! 스승 삼는 도가 전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으니, 사람들이 의혹이 없기를 바라기가 어렵게 되었다. 옛날의 성인(聖人)은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심했지만 오히려 스승을 따라 물었는데,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성인(聖人)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또한 심하지만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한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은 더욱 훌륭해지고 어리석은 이는 더욱 어리석어지니, 성인(聖人)이 훌륭한 이유와 어리석은 이가 어리석은 이유가 아마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愛其子하여 擇師而敎之하고 於其身也엔 則恥師焉하니 惑矣로다. 彼童子之師는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오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라. 句讀之不知와 惑之不解에 或師焉하고 或不焉하여 小學而大遺하니 吾未見其明也로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여 스승을 골라 가르치도록 하고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스승 삼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된 것이다. 저 어린아이들의 스승은 그들에게 책을 주고 구두를 익히게 하는 자이니, 내가 말한 바의 도(道)를 전하고 의혹을 풀어주는 자는 아니다. 구두를 알지 못하는 것과 의혹을 풀지 못하는 것에, 어떤 것은 스승을 삼아주고 어떤 것은 그렇게 하지 않아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니, 나는 그들이 현명하다고 볼 수 없다.

巫醫樂師百工之人은 不恥相師어늘 士大夫之族은 曰師曰弟子云者를 則群聚而笑之라. 問之則曰彼與彼年相若也며 道相似也라하여, 位卑則足羞하고 官盛則近諛라하니 嗚呼라. 師道之不復을 可知矣로다. 巫醫百工之人은 君子不齒어늘 今其智乃反不能及하니 其可怪也歟인저.

무당과 의원, 악사(樂師)와 모든 기술자들은 상대를 스승 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사대부(士大夫)의 무리들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라고 하면 무리지어 모여서 그들을 비웃는다. 그들에게 물으면 “저 사람과 저 사람은 나이가 서로 같고 도(道)가 서로 비슷하다.”라고 하면서 지위가 낮으면 부끄러울 만하다고 여기고, 벼슬이 높으면 아첨에 가깝다고 여기니, 아! 스승 삼는 도(道)가 회복되지 않음을 알겠다. 무당과 의원, 모든 기술자들은 군자(君子)들이 끼워주지도 않지만 지금 그들의 지혜는 도리어 미칠 수 없으니, 정말 괴이하도다.

聖人은 無常師하여 孔子師郯子, 萇弘, 師襄, 老聃이나 郯子之徒가 其賢이 不及孔子라. 孔子曰 三人行에 則必有我師라. 是故로 弟子不必不如師요 師不必賢於弟子라. 聞道有先後하고 術業有專攻이니 如是而已라.

성인(聖人)은 일정한 스승이 없어 공자(孔子)는 담자(郯子), 장홍(萇弘), 사양(師襄), 노담(老聃)을 스승 삼았으나, 담자의 무리는 그 현명함이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이 아니요,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도(道)를 들은 것에 선후(先後)가 있고 학술(學術)에 전공(專攻)이 있으니, 이와 같을 뿐이다.

李氏子蟠은 年十七에 好古文하고 六藝經傳을 皆通習之라. 不拘於時하여 請學於余어늘 余嘉其能行古道하여 作師說以貽之하노라.

이씨(李氏)의 아들 반(蟠)은 나이가 열일곱인데 고문(古文)을 좋아하고 육경(六經)의 경전(經傳)을 모두 익혔다. 시속에 구애되지 않고 나에게 배우기를 청하니, 나는 그가 옛 도(道)를 잘 실천하는 것을 가상히 여겨 사설(師說)을 지어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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