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大學)
사서오경의 하나인 유교 경전. 본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으나, 송나라 시대에 성리학이 확립되면서 사서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대학》의 원작자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는데, 주희는 경문 1장을 증자가 지었고, 전문 10장을 증자의 문인이 해설했다고 주장하였다. 경문은 성인이 직접 언급한 진리, 전문은 성인에 버금가는 현인이 경문을 정리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삼강령을 밝힌 부분을 경문으로, 팔조목을 밝힌 부분을 전문으로 보았다. 주희는 사서체제를 정립하면서 공자(논어) -> 증자 -> 자사(중용) -> 맹자(맹자)의 도통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대학을 증자의 저서라 하진 못하더라도 증자와 관계있는 책으로 만들었다. 주희가 정이의 설을 따라 3강령 중 ‘親民’을 ‘新民’으로 고치고, 본래 있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조 앞에 격물과 치지의 장을 새로 지어 보망(補亡)한 8조목을 만든 이래, 송대 성리학을 존숭하는 이들과 고본 《대학》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왕수인은 ‘친민’이 옳다고 하여 고본 《대학》을 따랐으니, 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 주희는 사서를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으로 읽으라 할 정도로 대학을 중요시했다.
《대학》은 자기 수양을 완성하고 사회 질서를 이루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론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대학’(大學)이라는 의미는 통치자의 학문이라는 설과 인격자의 학문이라는 설로 나눌 수 있다. 주자는 《대학》이 소학(小學)을 마치고 태학(太學)에 입학하여 처음 배우는 개설서라고 했는데, 오늘날 대학교의 기본 교양 교재와 같은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은 유가의 주요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수기치인(修己治人), 곧 자신을 수양한 후에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즉 사회의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한 후에 이를 주변 사회로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삼강령과 팔조목에 담아 내었다.
삼강령
명명덕(明明德) : 자신의 밝은 덕을 밝게 드러내야 한다.
신민(新民) : 자신의 밝은 덕으로 백성을 새롭게 한다. 고본 《대학》에 수록된 용어는 친민(親民) : 백성과 친하게 된다.
지어지선(止於至善) : 최선을 다하여 가장 합당하고 적절하게 처신하고 행동한다.
팔조목
격물(格物) : 세상 모든 것의 이치를 찬찬히 따져보는 것 → 고본 《대학》에는 없는, 주희가 새로 지어 넣은 조목
치지(致知) : 지식과 지혜가 극치에 이르게 하는 것 → 고본 《대학》에는 없는, 주희가 새로 지어 넣은 조목
성의(誠意) : 의지를 성실히 다지는 것
정심(正心) : 마음을 바로 잡는 것
수신(修身) : 자신을 수양하는 것
제가(齊家) : 집안을 화목하게 이끄는 것
치국(治國) :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
평천하(平天下) :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것
大學章句序
1. 大學之書, 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也. 蓋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 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
《대학》이라는 책은 옛날의 태학(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방법에 관한 것[책]이었다. 대개 하늘이 사람을 내릴 때부터 곧 이미 그들에게 인의예지의 성품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부여받은 기질이 간혹 고를 수 없다. 이 때문에 모두가 제 본성이 〈본래부터〉 가진 바(인의예지)를 알아서 그 본성을 온전하게 할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2.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 則天必命之以爲億兆之君師, 使之治而敎之,以復其性. 此伏羲神農黃帝堯舜, 所以繼天立極, 而司徒之職 典樂之官 所由設也.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3. 三代之隆, 其法寖備然後, 王宮國都, 以及閭巷, 莫不有學, 人生八歲, 則自王公以下, 至於庶人之子弟, 皆入小學,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 禮樂射御書數之文.
〈하(夏)·은(殷)·주(周)〉 삼대가 융성했을 때 그 〈교육의〉 법이 점차 갖추어지자, 그런 뒤로는 천자의 궁과 왕의 도읍으로부터 여항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두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신분이 높은〉 왕공으로부터 이하로 〈여항의〉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입학시켜서 그들에게 물뿌리고 쓸며, 호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예법·음악·활쏘기·말몰기·육서법(六書法)·셈하기의 문(文)을 가르쳤다.
4. 及其十有五年, 則自天子之元子衆子,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子, 與凡民之俊秀, 皆入大學, 而敎之以窮理, 正心, 修己, 治人之道, 此又學校之敎, 大小之節所以分也.
그들이 열 (또) 다섯 살이 되면 천자의 맏아들과 〈나머지〉 여러 아들부터 이하로 공·경·대부·원사의 적자와 모든 백성의 빼어난 자식까지 모두 태학에 입학시켜서, 그들에게 이치를 연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자신을 수양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으니, 이것이 또한 학교의 가르침에 크고 작은 절목이 나누어진 까닭이다.
夫以學校之設, 其廣如此, 敎之之術, 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 而其所以爲敎, 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 不待求之民生日用彝倫之外,
무릇 이 때문에 학교의 설치는 그 넓음이 이와 같았고, 그들을 가르치던 방법은 그 차례와 절목의 상세함이 또 이와 같았으되, 그 가르침을 삼는 방법은 또 모두 그것을 임금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서 얻은 나머지에 뿌리를 두었고, 그것을 백성이 일상생활하는 상도(常道)의 밖에서 구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5. 是以當世之人無不學. 其學焉者, 無不有以知其性分之所固有, 職分之所當爲, 而各俛焉以盡其力. 此古昔盛時所以治隆於上, 俗美於下, 而非後世之所能及也!
이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배우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 학교에서 배운 사람은 그 성품의 본래 가진 바와 직분의 당연히 할 바를 알 수 있어서 각각 제 본성과 직분에 힘써서 제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것이 옛날 〈하·은·주의〉 성대했던 시대에 정치가 위에서 융성하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워서, 후세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까닭이다.
6. 及周之衰, 賢聖之君不作, 學校之政不修, 敎化陵夷, 風俗頹敗, 時則有若孔子之聖, 而不得君師之位以行其政敎,
주(周)나라가 쇠퇴한 때에 미쳐,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이 나오지 않고 학교의 정책이 닦이지 않아서, 교화(敎化)가 점점 무너지고[陵夷] 풍속이 쇠퇴하여 문란(紊亂)해졌으니, 이때에는 공자(孔子)와 같은 성인이 있었지만, 임금과 스승의 지위를 얻어서 그 정사와 교화(敎化)를 시행하지 못하였다.
7. 於是獨取先王之法, 誦而傳之以詔後世. 若曲禮̖ 少儀̖ 內則̖ 弟子職諸篇, 固小學之支流餘裔, 而此篇者, 則因小學之成功, 以著大學之明法, 外有以極其規模之大,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
이에 다만 선왕(先王)의 법을 취하여, 그 법을 암송해서 전(傳)하여 후세(後世)에 일러주었으니, 〈《예기(禮記)》의〉 〈곡례〉·〈소의〉·〈내칙〉과 〈《관자(管子)》의〉 〈제자직〉 같은 여러 편은 진실로 소학의 지류(支流)이자 말류(末流)이고, 이편(〈대학(大學)〉)은 곧 소학(학교)에서 이룬 공을 이어받아서 태학의 밝은 법을 드러낸 것이니, 밖으로는 그 규모(規模)의 성대함을 지극히 한 것(삼강령)이 있고 안으로는 그 절목(節目)의 상세함을 다한 것(팔조목)이 있다.
8. 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而曾氏之傳獨得其宗, 於是作爲傳義, 以發其意. 及孟子沒而其傳泯焉, 則其書雖存, 而知者鮮矣!
〈공자의 제자〉 삼 천의 무리가 대개 그 말을 듣지 못한 이가 없었겠지만, 증자가 전수한 것이 홀로 그 종지(宗旨)를 얻었다. 이에 전의(傳義)를 지어서 그 뜻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맹자가 죽고 그 전해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어(됨에 미쳐)서는 그 책은 비록 남아 있으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9. 自是以來, 俗儒記誦詞章之習, 其功倍於小學而無用; 異端虛無寂滅之敎, 其高過於大學而無實. 其他權謀術數, 一切以就功名之說, 與夫百家衆技之流, 所以惑世誣民̖ 充塞仁義者, 又紛然雜出乎其閒. 使其君子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 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 晦盲否塞, 反覆沈痼, 以及五季之衰, 而壞亂極矣!
이때(부터) 이후로 속유(俗儒)의 기송(記誦)·사장(詞章)의 학습은 그 공이 소학(小學)보다 배가 되나 쓸모가 없었고, 이단의 허무(虛無)·적멸(寂滅)의 가르침은 그 고상(高尙)함이 대학(大學)보다 지나치나 실제가 없었고, 기타 권모술수(權謀術數) 일체로써 공명(功名)을 이루려는 학설과 저 백가(百家)·중지(衆技)의 무리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여 인의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것[所以]들이 또 어지럽게 그들 사이에서 뒤섞여 나왔다.
10. 天運循環, 無往不復. 宋德隆盛, 治敎休明. 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 而有以接乎孟氏之傳. 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 旣又爲之次其簡編, 發其歸趣,
하늘의 운수가 순환하여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다스림과 교화가 아름답고 밝아졌다. 이에 하남 정씨 〈정호(程顥; 明道)와 정이(程頤;伊川)〉 두 부자께서 나와서 맹씨에게서 전해져 온 〈가르침〉에 접할 수 있었으니, 진실로 처음으로 이 편(《대학》)을 높이고 믿어서 (그것을) 〈세상에〉 알렸고, 이미 또 이를 위하여 그 책을 순서를 바로잡아 그 귀착되는 의미를 드러내었으니,
11.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 聖經賢傳之指, 粲然復明於世. 雖以熹之不敏, 亦幸私淑而與有聞焉.
그러한 뒤에 옛날의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과 성인(공자)이 〈지은〉 경(經)과 현인(증자)이 〈풀이한〉 전(傳)의 뜻이 환하게 세상에 다시 밝혀졌으니, 비록 영민하지 못한 나로서도 다행히 사숙하여 참여해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12. 顧其爲書猶頗放失, 是以忘其固陋, 采而輯之, 閒亦竊附己意, 補其闕吳, 俟後之君子. 極知僭踰, 無所逃罪, 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 學者修己治人之方, 則未必無小補云.
돌아보니, 그 책이 여전히 꽤 흩어져 잃어버렸으니, 이 때문에 내 고루함을 잊고 〈주석과 해설을〉 뽑아서 모았으며, 사이에 또 내 생각을 나름대로 붙여서 그 빠지고 생략된 부분을 보충하고서 후세의 군자를 기다리니, 분수를 넘어 죄를 피할 곳이 없음을 매우 잘 알지만, 그러나, 나라가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려는 뜻과 학자가 자기를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법에는 결코 작은 보탬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13. 淳熙己酉二月甲子新安朱熹序.
순희(淳熙) 기유(1189)년 2월 갑자일에 신안(新安) 주희(朱熹)는 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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