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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천문 이야기

요한계시록 짐승의 표, 숫자 666의 의미! 예수님과 태양은 동일한 존재인가?

by 묵돌33 2020. 12. 30.

 

 서양의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님과 마리아 등의 주변인물을 묘사할 때 얼굴 뒤에 동그랗게 후광을 삽입해 그려 넣은 작품들을 우리는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예수님의 성경에 묘사되어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즉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오로지 신성성 부여만을 위해 그려넣는 것일까?

 

 물론 이 주장도 맞지만, 필자는 이것이 이유의 전부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똑같은 형상이다. 태양은 구체를 중심으로 빛이 발광한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에서 예수님을 왜 태양처럼 묘사했을까? 예수님과 태양은 매우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난번 작성했던 “크리스마스의 유래를 밝히다” 라는 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일인 성탄절이 태양신 숭배사상의 태양 부활 기념 축제에서 유래한 것을 알아봤다. 이는 아무런 관련 없는 예수님과 태양신을 엮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태양은 이 기념일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닮아 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 666이 바로 태양과 예수님의 동일성의 비밀을 열 수 있는 열쇠와 같은 숫자이다. 기독교인들이 알면 안되기에 그것을 사탄의 숫자라고 표현한 것일까? 마치 창세기 때 선악을 알게하는 그 나무의 열매와 같이 말이다.  

 

2020/12/22 - [종교와 천문 이야기] - [크리스마스특집] 성탄절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유래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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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그렇다면 이번 글에서는 예수님과 태양의 동일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어떤 부분이 예수와 태양이 닮아 있는 지 알아보자.

 


 

예수님의 죽음 십자가 사건

 

1. 죽음과 탄생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시작으로, 죽음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후에 무기를 들고 있는 군인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져 심판을 받게 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하신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그는 무덤에서 벗어나 다시 탄생하신다.

 

 태양은 1년 간의 주기를 봐야 한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태양이 뜨는 위치가 조금씩 바뀐다. 그 위치를 우리는 태양과 같이 뜨는 별자리인 12황도궁을 보고 알 수 있다. 고대인들은 태양과 같이 뜨는 별들을 보고 별자리로 만들어 그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쉽게 인간이나 사물로 형상화해 묘사했고, 이를 통해 수많은 별자리에 얽힌 신화가 탄생하고 인간들의 종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태양은 약 11월경에 전갈자리와 같이 뜬다. 이 때는 겨울로,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시기이다. 고대인들은 이를 보고 태양이 빛을 잃어간다고 여겼다. 전갈에게 물려 독을 맞고 태양이 죽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는 실제 죽는 것이 아니고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의 감소와 태양의 위치가 점점 지평선과 가까워지는 일종의 천문 현상인데,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의 고대인들은 이를 보고 태양이 죽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태양은 12월경에 전갈자리를 지나서 궁수자리와 만나게 된다. 궁수자리는 활을 들고 말을 탄 형상으로 군인과 그 이미지가 겹친다. 궁수자리의 화살은 태양을 겨누고, 태양은 이내 떨어져 12월 22일 빛이 가장 약하고 하늘에 떠 있는 시간과 낮의 길이 가장 짧아지게 된다. 이는 24절기에서 동지(冬至)에 해당한다.

 

 북위 66.6도의 북극권지역에 가면, 이시기에 태양이 아예 지평선 위로 뜨지 않고 정말 죽은 것처럼 보인다. 이를 북권의 극야현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3일 후, 죽었던 태양은 다시 지평선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이를 새로운 태양의 탄생으로 여겼다. 한해가 지나고 나면 "새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본디 북위 90도가 북극성과 가장 가까워야하는 지구 최북단이어야 하나, 지구의 자전축이 23.4도 기울어 있기 때문에 90에서 23.4도를 빼면 66.6도에 위치한 지역이 최북단이 된다. 이곳에서는 북극성 신앙과 태양신 숭배사상의 샤머니즘이 존재하는데 바로 위와 같은 내용이다. 기독교의 예수님 신화와 똑같다. 

 

666은 사탄의 숫자가 아니다. 다만 예수님과 태양의 동일성이 드러나게 되는 지역의 위치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를 사탄화 하고 금기시 해 기독교인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과 태양의 동질성이 세상에 알려지면 예수님을 신성화한 기독교가 소멸할 수 있는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 아닐까? 

 

 예수님의 생애와 태양의 1년 주기는 이처럼 매우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죽음과 탄생에 얽힌 생애와 천문현상이 그것을 증명한다. 전갈자리와 궁수자리에서 태양이 죽는 현상은 아래 지난 글에서 자세히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고하면 이해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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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왜 유대 대제사장들 앞에서 굳이 예수님께 입맞춤을 했던 것일까? 충분히 "저 자가 예수다"라고도 말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분명 무언가를 상징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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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

 

2. 부활

 본문에서는 죽음과 탄생을 하나로 묶었고, 부활을 따로 정리하였다. 본문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과 태양이 부활한 날은 12월 25일이어야 맞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에서는 성탄절로 예수님의 탄생일일 뿐이고, 그의 부활기념일은 4월경이다. 하지만, 이 논리는 모순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내세우는 부활절이 틀린 날도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절인 4월경은 24절기의 춘분(春分)에 해당한다. 춘분은 밤이 더 길었던 겨울을 지나 밤낮의 길이가 동일해지는 날이다. 이는 태양이 동지 때 완전히 빛을 잃어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아졌다가 12월 25일부터 다시 빛을 회복하기 시작해서 빛을 완전히 회복하고 하루동안 어둠보다 빛이 길어지는 절기이다. 즉, 춘분 이후는 하늘에 어둠보다 빛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게 되고, 태양이 높이 오랜 시간 떠 있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완전히 빛을 회복하고 그 기력이 어둠보다 강력해지는 4월이 태양이 다시 부활한 날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예수님의 부활절인 4월과 시기가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논리에서 중요한 것은 탄생과 부활을 같은 개념으로 놓지 않는 것이다. 탄생은 태어나는 시점이며, 부활은 완전히 그 힘을 회복한 시점이라고 놓고 봐야한다.  

 


 

오병이어 사건

 

3. 오병이어 기적 사건

 오병이어의 기적 역시 본 블로그에서 이전에 그 사건의 진실과 유래에 대해 설명하였다. 오병이어 사건의 내용은 따로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2020/10/25 - [종교와 천문 이야기] - 마가복음 6장, 오병이어의 기적 그 뜻과 의미에 대해 알아봅시다.

 

마가복음 6장, 오병이어의 기적 그 뜻과 의미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번에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 조차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매우 맹목적이며 비논리적이다. 본인이 어렸을 적에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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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켜 수천명을 먹이신다. 과연 이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이는 과학 비과학을 따질 일이 아니다. 천문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병이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늘에 떠서 동식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자라나게 하여 만물을 소생하고 배불리 먹이는 것. 바로 태양이다. 인간은 씨를 뿌려 농사짓고 추수해서 태양의 산물을 먹고 살아간다. 태양이 부여하는 빛이 없다면 생명도 없는 것이다. 바로 물고기자리와 처녀자리 시대의 태양이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해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와 태양의 주기만 동일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태양이 하는 일까지도 똑같다.

 


 

성경

 

4. 성경에 기록된 말씀

 성경에 예수님에 관해 기록된 말씀들은 예수님이 태양이고 빛이고 생명을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예수님은 스스로 줄곧 나는 빛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게 태양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증거가 될 수 있는 성경 구절들을 나열해보겠다.

 

·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 요한복음 1:5  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요한복음 1:9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취는  있었나니

·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이니

· 요한복음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이 예수님이 빛이라고 말하고 있다. 태양이 빛이고 생명의 근원이다. 예수님은 태양이다.


 

태양 코로나 현상

 

5. 예수님의 형상에 대한 묘사

 본문 서론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얼굴에 그려 넣는 동그란 후광, 그리고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 등의 묘사는 모두 예수님이 태양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낸다.

 

 왜 인류를 위해 희생하며 십자가에 못박힐 때, 가시 면류관을 쓴 것인가? 단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씌운 것일까? 아니다. 이는 태양 구체에서 태양 주변에 퍼지는 빛의 분산인 코로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코로나는 그 어원이 라틴어의 왕관이다. 그리해서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이 유대 나사렛 왕의 왕관이 되는 것이다.


 

 

 

6. 결론  

예수님과 태양은 그 생애와 주기가 동일하며, 하는 일 역시 동일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태양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병이어 사건과 성탄절 태양숭배사상 유래의 진위여부 따위는 논쟁할 이유도 없어진다. 예수님이 태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북위 66.6도의 위치에 가면 이 예수님과 태양의 죽음과 탄생에 관한 비밀이 풀려지고 그 신비로움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성경의 저자는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 숫자 666을 악마의 숫자라고 표현하고 금기시한 것인가? 666이 악마의 숫자라면, 왜 성경은 66권인가? 숫자일 뿐인 6에 선악이 있을까? 단지 인간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악을 부여해 금기시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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